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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현대시
2015년 06월 12일 21시 34분  조회:3785  추천:0  작성자: 죽림
민족 분단 상황과 현대시

한국 현대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1945)을 맞이하면서 잃어버렸던 언어와 정신을 함께 되찾는다. 이 시기의 시인들은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위해 사회적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해 나아가기 위한 방법을 정치적인 것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시대의 시적 경향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노정하면서 정치주의 시를 중심으로 논란을 벌이게 된 것은 이 시대가 바로 ‘정치의 시대’였음을 뜻하는 것이다. 
해방 시단에서는 박종화, 김광섭, 서정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등이 우파 시단을 주도하고, 임화, 박세영, 박팔양, 김기림, 정지용, 오장환 등이 좌파 시단을 대표하면서 자연스럽게 좌우 대립의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이들은 해방 직후 한국 민족이 경험하게 된 감격과 열정을 실감있게 보여주는 두 권의 사화집을 간행한 바 있다. 「해방기념시집」(1945)과 「횃불―해방기념시집」(1946)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권의 시집은 물론 해당 직후 문단이 이념적인 성격에 따라 좌우세력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새로운 국가 건설과 민족의 삶의 방향을 놓고 고심하고 있었던 시인들의 심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해방기념시집」은 ‘건설 도정에 있는 새로운 시의 지표’를 제시한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해방 직후 한국 시단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념적 색채보다는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작품들을 주로 싣고 있다. 그러나 「횃불」의 경우에는 좌익 문단 조직인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하고 있던 시인들이 엮은 시선집이다.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운 혁명투사에게 바친다.’는 발간 목적을 밝히고 있으며, 계급투쟁과 연계하여 정치 현실에 관한 대한 주장을 내세운 작품들이 많다. 
해방 시단에서 가장 커다란 주제로 부각되었던 것이 시와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시’의 가능성에 관한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이념적 논쟁은 한국의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중단된다. 시와 정치를 결합을 주장했던 상당수의 시인들은 이 대혼돈의 시기를 이용하여 월북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대시는 해방과 민족 분단과 전쟁을 모두 경험하면서 비로소 모국어의 감각과 기법을 회복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시가 민족의 삶 가운데 끊임없이 생성되는 노래이며, 그 자체의 언어와 형식도 시의 정신에 따라 스스로 갱신해 나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해방 후 한국 현대시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순수와 서정의 세계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에 겪어야 했던 상황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시에 있어서 서정성의 전통은 지속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서정주, 유치환, 신석정,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박남수 등은 자신들이 키워온 서정시의 전통과 시적 신념을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특이한 개성을 지니고 있는 시인들이긴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삶의 조화를 지향하고 있다든지, 전통적인 서정성에 바탕을 두고 언어의 리듬을 살려내고 있다든지 하는 점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경향을 보여준다.
서정주는 식민지 시대에 발간한 첫 시집 「화사집」(1941)에서 사물에 대한 관능적 감각을 보여주면서도 삶을 바라보는 허무주의적 자세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시집 「귀촉도」(1948)에 이르러서는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요소보다는 서정성이 균형을 찾고 있으며, 감각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정서를 폭넓게 깔고 있다. 서정주의 시적 변모과정에서 중요한 계기를 이루는 이러한 시적 전환은 전통적 정서의 한복판에 그의 시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국화 옆에서」, 「밀어」 등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전적인 격조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한국적인 고유정서에 탐닉하면서 토착 세계 속으로 자신의 시정신을 이끌어간 것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고 하겠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귀촉도」 

서정주의 시는 한국전쟁 이후 토착어의 시적 탐구, 시적 형식과 율조의 조화 등을 보여주면서, 달관의 자세로 전통의 현장이며 불교적인 신비가 곁들여 있는 ‘신라’라는 신화적 세계로 발을 내딛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자기 변화는 시집 「신라초」(1961)에서부터 「동천」(1969)으로 요약된다. 시집 「신라초」는 서정주의 시적 세계에서 전통적인 것과 동양적인 불교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시인이 가장 전통적이고 이상적인 시적 세계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라’이다. 그의 ‘신라’에 대한 관심이 반역사적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서정주만이 발견해 낸 상상력의 고향과도 같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서정주의 ‘신라’는 정서적인 폭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깊이에 의해서 시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불교적인 설화의 세계는 윤회적인 삶과 그 내밀한 의미를 통하여 하나의 조화로운 영원의 공간으로 표상된다. 설화적 세계의 시적 수용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서정주의 상상력으로 재구되고 있는 ‘신라’는 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신화적이다. 더구나, 불교적 취향이 덧붙여지고 있기 때문에 신비감마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영원회귀의 공간이 어떤 면에서 자기 소멸의 허무주의를 낳고 있음도 사실이다. 서정주가 설화적인 공간을 벗어나 현실적인 고향에로 안착하고 있는 것은 시집 「질마재 신화」(1975)에 이르러서인데, 이것은 그가 「귀촉도」를 노래불렀던 시절에서 무려 서른 해에 가까운 긴 여정을 거친 후의 일이다.
한국 현대시의 전개 과정에서 「청록집」(1946)의 세 시인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이 보여준 시의 세계는 한국 현대시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식민지 시대 말기에 시단에 등장하여 해방 직후 우파 문단을 주도하게 된 세 시인의 합동시집 「청록집」은 한국적 자연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명제로 그 의미가 규정된 바 있다. 그리고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시에서 서정시의 맥락을 역사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시집에서 볼 수 있는 박목월의 향토성, 박두진의 이데아 지향, 그리고 조지훈의 고전적 정신 등은 각 시인의 시적 개성으로 더욱 확대 심화된다.
박두진은 「오도」(1953), 「박두진시선」(1956) 등의 시집에서 반복적인 율조와 절창의 언어를 통해 자기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그는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기도 하고, 자연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를 노래하기도 한다. 이 시기의 「해」, 「청산도」와 같은 작품을 보면, 자연을 대상으로 읊어지는 그의 시들이 존재의 심연을 헤매는 기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생명에의 경외감으로 채워지기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시에 과감하게 활용되고 있는 의성․의태어나 직유적인 표현, 파격을 이루는 산문 형태의 시적 진술 등은 격렬한 정서의 충동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두진의 시가 현실적인 삶의 공간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과정은 시집 「거미와 성좌」(1962), 「인간 밀림」(1963)에서 확인된다. 현실의 격동을 체험하면서 그는 초월적인 신념보다 오히려 삶의 의지와 적극적인 비판의식을 중요시한다. 「기」, 「봄에의 격」, 「꽃과 항구」 등에서 볼 수 있는 시적 의지는 시인 박두진이 4․19 혁명을 체험하면서 얻은 새로운 영감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의 시는 보다 격조 있게 정서를 해방시키고, 보다 절실하게 실천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시적 형식은 더욱 자유로워지고, 언어의 파격도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형식의 개방성이 충일하는 정서를 만남으로써, 보다 설득력을 지닌 의지적인 시를 빚어내고 있다. 
박두진은 시대의 부정적 가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면서, 이념적으로는 절대적 가치의 추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치 추구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후기 시편들에서는 세속적 삶을 순화하며 혁신하는 자세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의 시는 「인간 밀림」(1963)에서부터 「수석열전」(1973) 등에 이르러 내밀한 자기 인식에 근거하면서도 무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간을 두루 섭렵하는 절대적인 경지를 이루어낸다. 특히 시집 「수석열전」에 이르러 ‘수석’이라는 구체적인 자연의 형상에 시 정신이 조응하고 있다. 시인은 ‘수석’을 우주 생성의 시초에 형성된, 시간적인 비의를 지닌 하나의 온전한 대상으로 그려낸다. 박두진의 시적 세계는 자연의 조화와 신비를 담고 있는 수석의 형상을 인간의 삶과 그 격동의 과정과 융합시켜 새로운 가치로서의 시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박목월은 「산도화」(1954)에서 「난․기타」(1959)에 이르기까지 고유의 정서와 리리시즘을 섬세한 감각으로 재현하면서, 일상의 현실과 삶의 체험을 자신의 시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다. 박목월이 「청록집」에서 노래한 순수한 자연은 시 「청노루」, 「자하산」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의 감각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가 삶의 현실로 시선을 돌리면서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것은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과 거기에 깃들인 인정미이다. 「소찬」, 「당인리 근처」와 같은 시에서 그는 애환이 담긴 삶이지만 소탈한 일상에 만족한다. 특히 그는 초기 시에서와 같이 자연이라는 시적 대상을 관조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현실에 자리잡고 그 생활 속에서 작은 기쁨을 누리는 인간의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시에는 자신의 일상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가족들과의 삶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낸 것이 많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살아가는 삶의 모습과 그 소박한 정서를 꾸밈없이 표현함으로써 더 큰 호소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의 언어는 토착어의 리듬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으며, 자기 삶의 본바닥인 고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박목월의 후기시는 「경상도 가랑잎」(1968)에서처럼 삶에 대한 달관의 자세를 더욱 잘 보여준다. 그는 경상도 방언을 시의 언어에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고향 경상도의 토속적인 세계를 돌아보고 있다. 이 시집에서 드러나고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시인 자신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와 가락을 시적 표현의 장치와 기법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이별가」

앞의 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박목월은 경상도 방언 자체의 음성적 자질의 시적인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시인 자신이 지니고 있는 토착어의 정서에 대한 자기 탐구에 해당되는 것이다. <니 뭐락카노>라는 경상도 방언의 어조는 매우 복잡한 내면적인 정서의 표출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은 당위적인 것에 대한 반문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확인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강한 부정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말의 언어적 함축이 시 이별가의 전체적인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박목월은 그의 시에서 삶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달관의 자세로 보여주면서, 경험적 현실의 갈등을 내면화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의 말투와 가락을 빌려 그들의 순박함과 인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이 같은 기법을 통해 시인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토속의 세계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인간 본래의 삶의 자세에 관심을 집중한다. 삶과 죽음의 관계를 보다 여유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시에서 짙게 풍기는 것은 허무의 페이소스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는 죽음에 대한 의식과 허무감이 짙게 드러나고 있다. 그의 언어는 토착어의 리듬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러한 시 세계의 변화를 포괄하고 있으며, 자기 삶의 본바닥인 고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훈은 시단에 등단하면서부터 전통과 역사에 대한 인식에 철저하고자 하였고, 특히 시적 형식의 균형과 정서의 절제에 남다른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펴낸 공동시집 「청록집」에 수록된 시뿐만 아니라, 해방 직후의 여러 작품에서 질서와 조화의 세계를 시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의욕을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시를 대표하는 「고풍의상」은 한국인 생활문화에서 발견한 전아한 고전미를 노래하고 있으며, 「승무」에서는 현세적 삶의 고뇌가 불교적 교리에 승화되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승무의 춤사위를 통해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조지훈이 노래하고 있는 시적 대상은 동적인 이미지보다는 정적인 이미지에 치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시에는 대상에 대한 관조의 태도가 강하고, 다양한 정서적 충동을 동시에 포괄하고자 하는 시적 긴장이 자리잡는다. 절제의 언어와 정서의 균형을 통해 이지와 정열의 조화에 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지훈은 「풀잎 단장」(1952) 이후 「조지훈시선」(1956), 「역사 앞에서」(1959) 등의 시집으로 전후의 자기세계를 정리하고 있다. 고전적인 정신의 추구를 내세우면서 해방 직후의 혼란을 헤쳐나온 조지훈은 절제와 균형과 조화의 시를 통해 자연을 노래하고 자기 인식에 몰두한다. 시 「풀잎 단장」에서는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다. 풍설, 풀, 바위, 구름과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모두가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자연현상에 속하지만 신비스러운 원리에 의하여 생명적인 것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조지훈은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사회적 현실에의 관심을 더욱 확대하면서 「다부원에서」와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한다. 이 작품은 전쟁의 참상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 참전시의 대표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조지훈은 변화의 시인은 아니다. 그는 자연을 노래하거나 지나간 역사를 더듬거나 간에,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거나 자기 응시에 몰두하거나 간에 언제나 비슷한 어조를 지킬 뿐이다. 조지훈이 지니고 있는 하나의 목소리, 그것은 그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면서 동시에 그의 시를 고정시켜 놓고 있는 징표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현대시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에 고은, 구상, 구자운, 김관식, 김광림, 김규동, 김구용, 김남조, 김수영, 김윤성, 김종문, 김종삼, 김춘수, 박봉우, 박인환, 박재삼, 박태진, 박희진, 성찬경, 이동주, 이형기, 전봉건, 정한모, 조병화, 홍윤숙, 황금찬 등의 등장으로 다양한 시적 경향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 이들 가운데 어떤 시인들은 전통적인 서정의 세계를 더욱 넓히고자 노력하며, 어떤 시인들은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시정신의 구현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들 새로운 세대의 시인을 당대 문단에서는 ‘전후파’라고 명명한 적도 있지만, 이들의 시에서 가장 특징적인 한 시대의 정신적 징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김춘수는 첫 시집 「구름과 장미」(1948)에서부터 시적 대상의 존재론적 의미를 언어를 통해 찾고자 하는 시적 탐구 작업을 시작한다. 그의 시는 자연스럽게 존재와 그 가치의 문제로 주제가 집중된다. 「꽃의 소묘」(1959)에 이르면,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현실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시인의 노력도 나타난다. 물론, 김춘수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대상에 대한 시적 인식의 문제이다. 그는 감각을 통해 관념을 붙잡으려 하였고, 그것이 바로 시의 본령이라고 생각하였다. 시집 「꽃의 소묘」를 통해 그가 추구하던 관념의 세계는 시적 형상화의 가능성을 이미 드러내고 있다. 시인 김춘수는 관념의 세계가 시의 형상을 통해 표시될 수 있다고 믿었고, 관념이 언어의 피안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존재의 집’으로서의 언어에 매달리게 된다. 

김춘수의 시집 「타령조․기타」를 보면 관념을 지향하던 언어가 어느 장면에서 기교로 떨어지고 어느 장면에서 의미를 해체시킨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으로 언어의 자연스러움의 회복을 모색하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관념의 탐구에 이은 감각의 실험을 거쳐 그의 시세계를 크게 장악하고 있는 ‘무의미의 시’에 도달한 것이다. 시집 「처용」에서 김춘수는 설화 속의 인물 ‘처용’을 만남으로써 자기의 목소리를 가다듬게 된다. 언어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릴 때 의식은 무한의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김춘수 자신은 ‘자유 연상’이라는 말로 이를 지적한 적이 있지만, 사실 「처용단장」이라는 연작시는 시인의 무의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시를 이루고 있다고 할 정도로, 김춘수는 자신의 작품에 어떤 자각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사물의 존재란 그냥 있는 것이지, 의식된 것도 아니며 의미화된 것도 아니다. 김춘수는 시를 통해 존재에 도달하고자 하지 않고, 그 존재가 스스로 열려서 드러나기를 믿고 있는 것이다.

박재삼은 고전적인 정서의 세계와 향토적인 감각으로 일찍부터 전통시의 영역을 확대해 오고 있다. 그의 시 가운데에서 「피리」, 「울음이 타는 강」, 「추억에서」 등은 인간의 삶과 그 속에 내재해 있는 허무의식,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비애의 정서를 율조의 언어로 재현한다. 그가 노래하고 있는 삶의 비애는, 물론 삶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절망 등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것은 삶의 근원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재삼의 첫 시집 「춘향이 마음」가운데에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모티브를 취한 「춘향이 마음 초」라는 연작시가 있다. 그 중에서도 「수정가」, 「바람 그림자를」, 「매미 울음에」, 「자연」, 「화상보」 등이 뛰어난 시적 형상성을 보여준다. 한국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춘향이의 이야기를 시화하는 일은 시인 자신이 춘향이라는 한 여인의 삶에서 시적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춘향이는 전통적인 윤리, 가치와 미의식, 한과 사랑의 정서 그 자체에 해당한다. 시인을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춘향의 이야기에 새로운 시적 감각을 덧붙인다. 그것은 전통 윤리를 넘어서는 당돌한 욕망이 되기도 하고,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더해지는 현대적인 관능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의 정서를 최대한 확장하여 눈물의 미학을 살려내고 있다. 
박재삼은 시 창작 활동은 시집 「햇빛 속에서」(1970), 「어린 것들 옆에서」(1976), 「내 사랑은」(1985), 「다시 그리움으로」(1996) 등으로 이어진다. 그는 오랜 동안 이어져 오는 시의 여정 가운데에서도 자연이라는 대상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의 시에 있어서 자연은 삶의 이치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 그리하여 영원하고 지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세계이다. 그는 그 자연에 의지하여 위로와 지혜를 얻지만, 때로는 자연의 완벽한 아름다움과 인간과의 거리 때문에 절망하기도 한다. 박재삼의 시는 한국어에 대한 친화력과 전통적인 정서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 등을 통해 한국전쟁 이후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남조는 첫 시집 「목숨」(1953)을 발간하면서 본격적인 시 창작활동을 전개한다. 그가 발표한 시 「황혼」, 「낙일」, 「만가」 등은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소화해 내고 있다. 특히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완전하게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남조의 시는 제3시집 「나무와 바람」(1958)에서부터 초기 시에서 보이고 있던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벗어나 정서의 균형을 보이기 시작한다. 김남조는 시집 「정념의 기」(1960)에서 초기시의 세계를 결산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을 일관하는 정서의 주조는 사랑의 탐구이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적인 데에 머무르지 않고 영혼에 귀의함으로써 위안과 안식을 얻으려 하고 있다. 특히 시 「정념의 기」, 「너에게」, 「가을의 기도」 등은 인생의 고뇌를 극복하고자 하는 격렬한 몸짓이 시적 언어 속에 매끄럽게 용해되어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고뇌와 삶에 대한 욕망을 기구하는 자세로 노래하고 있는 김남조의 시는 어떤 경우에 종교적인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고 있는 간절한 기도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것은 한층 더 심화된 신앙적 경건성을 드러내면서 시적 감응력을 높이고 있다. 시집 「겨울바다」(1967)에 이르러 김남조의 시는 정감의 세계를 상상력의 풍요로움을 통해 묘사해 내면서 더욱 정갈해진다. 감각적인 언어와 동적인 이미지들이 함께 어우러져 일구어내고 있는 시 정신의 풍요로움은 정념의 시를 추구해 온 이 시인의 가장 큰 미덕이다. 김남조의 시는 「김남조 시전집」(1983)을 통해 하나의 매듭을 이루지만 이후에도 섬세한 감각과 정서를 종교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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